달력을 보니 오늘이 114주년 철도의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축현역(현재의 도원역)에서 노량진역까지.
도원역에 있는 한국최초 철도 기공지. 표지석
한복을 입은 우리측 고관과 미국인 부설권자 모오스 참석. 사진출처 -화도진도서관
소장하고 있는, 1969년 9월18일 발행된 철도창설70주년 기념판.
고교 졸업후 서울로 기차통학을 하였다.
당시 기차역은, 인천(하인천)-동인천-제물포-주안-부평-소사-오류동-영등포-노량진-용산-서울역.(현재는 28개역)
제물포에서 서울역까지 1시간. 배차간격이 40분(?) 30분(?)으로 기차를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아침 등교시간에는 주로 대학생이 많았으나,고교생과 심지어 국민학생도 간혹 눈에 띄었다.
통학시간에는 승객이 많아, 일부 학생들은 객실이 아닌 기관차의 난간에 올라서 가기도 하고....
객실 출입구에 서서 밖으로 튀어나온 손잡이를 잡기도 하였으며..
기차에 오르는 발판 계단에 편하게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가기도 했다.
아래 위로 열고 닫는 창문은 닫을때는 조심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할만큼 무거웠다.
여름에는, 천정에 있는 선풍기가 바람을 불어주기도 하였으나 요즘의 에어콘에 비하면 택도 없는 수준.
객실 내부의 창문아래에는 지금은 생각조차 못할.. 재떨이까지, 객실내에는 항상 자욱한 담배연기 때문에 여학생들은 코를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동아일보~스포츠 서울~" 신문팔이들은 허리춤에 두툼하게 감싼 신문을 팔러 돌아다니고...
"고소한 땅콩이 한가마니에 oo원~" 땅콩은 투명 셀로판 종이에 삼각형으로 포장하였다. (요즘의 삼각 김밥 비슷한 모양. 크기도 삼각김밥 크기와 비슷)
통학생들은 패스를 구입하여(1개월 정기권)승하차시에 역무원에게 제시, 객실내에서 수시로 팔에 완장을 두른 차장이 돌아다니며 차표검사를 하였다.
이 할인권은 70년대초 학교에서 발급받은 기차 할인권,
여름방학에 사용계획으로 발급.. 학생 30% 할인.
80년대 추정 제물포역
패스 라고 불리우던 옛날 1개월 정기승차권.
60년대 후반 제물포역. 귀여운 하얀모자를 쓴 인화여중고 학생들.
출처-인천의 산과 하천, (인천 역사문화연구실)
주안역을 지나면 왼편의 허허 벌판에 높은 붉은색 굴뚝의 벽돌공장.
지금의 간석종합시장 근처 벽돌막 사거리가 그곳이다.
이곳에 벽돌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벽돌막사거리 라는 지명의 유래를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런지...
부평역이 다가오면 왼쪽에 군부대.
아래 사진 왼쪽, 여러개의 동일한 모양 건물이 연달아 보인다.
거의 10개동쯤 되는것으로 기억된다.
왼쪽사진은 군부대 내의 건물, 오른쪽은 부대를 헐고 조성된 공원. 출처:인천땅 이만큼 알기
부평역 오른쪽 역사 뒤로, 비포장 신작로가 보이고 신작로 양쪽에 보이는 주택 몇채들...
신작로 끝에는, 고등학교 친구로 팝송을 좋아하던 주광수네집. 그뒤로 하얀 건물의 경찰학교가 있었다.
소사역 부근은 온통 복숭아와 포도밭. 80년대인가...밭에서 대학생들의 미팅이 빈번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그곳은 예전 복숭아, 포도밭은 자취도 없다. 온통 아파트와 건물들뿐.
소사는 복숭아의 고장이었다...
옛 소사역 링크---> http://www.ibsnews.kr/news/17941
구일역 근처 왼쪽에는 지금도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근사한 공장 건물이 있다.
자유당 정권시,부통령이던 이기붕이 운영한다고 통학생들 사이에 전해졌던 하얀색의 동립산업.
그공장은, 군대에 건빵을 제조하여 납품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은 CJ그룹 소속 공장.
동립산업 전경
영등포역에 도착하면 호프냄새 풍기던 오른쪽의 OB 맥주와 크라운맥주공장.
공장의 창문 너머에 반짝거리는 구리색 커다란 깔대기를 엎어놓은 모양의,
아래는 둥글고 위로는 뾰죽한 모양의 시설물이 보였다.
달콤한 과자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노량진(용산인지...?)의 왼편 언덕위에 서있던, 높은 회색 시멘트 굴뚝이 보이는 오리온제과.
노량진역 오른쪽의 유한양행앞 대로. 실미도 부대원들의 최후(1971년)장소는 지금도 그곳을 지날때 마다 생각나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인천역(하인천).
인천역 사진출처 - 화도진도서관
60년대 인천역 (하인천)
한국철도 탄생역이라는 조형물이 역앞에 있다.
인천역-1970 (출처-컴팩스마트시티)
1963년 동인천역. 뒤에 보이는 수도국산.
국민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생각난다.
밤에 인천항에 내린 외국인들이 수도국산에 켜진 등불을 보고,
한국에도 아파트가 많다고 신기해 하였다는 일화.
깜깜한 밤. 높은곳에 촘촘히 켜져있는 등불을 보고 아파트로 착각을 했다는 얘기.
유추하건데,그당시 수도국산의 집들은 전등도 있었겠지만, 호롱불(등잔불)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심지에 불을 켜고 외부는 유리로 되어있는 등잔불.
개축 되기전의 1982년 동인천역. 오래전 기차역 앞에는 꼭 있는 시계탑.
동인천역 지하도 공사 (출처-컴팩스마트시티)
현재의 동인천역앞 대한서림. 서점은 꼭대기로 밀려나고...서점이 있던 1층은 빵집.
옛날 이곳은 1층 대한서림. 그위로 별다방,별제과,별음악감상실이 층층마다 있어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곳.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음악다방,제과점,음악감상실이 있기도 했지만,동인천역 맞은편에 있는 서점이라는 독특함때문에
일반인들의 약속장소로 많이 이용되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도 대한서림앞에는 항상 사람들이 서있어 약속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옛 대한서림의 별음악감상실 링크---> http://news.i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0947
1층에 서점이 있던 대한서림의 예전 모습. 출처: 굿모닝 인천9월호,.
동인천역에 내리면 오른쪽에는 미담다방. 굿모닝치과 밑에 보이는 휴대폰대리점이 옛날 미담다방 장소로 추정된다.
2층 굿모닝 치과이던가??? 세월이 오래되니 기억이 가물가물...
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있어 만남의 장소로 최적이었다
또한 음악다방 이므로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이 드나들던 곳.
수도국산 박물관에 미담다방 재현. 링크---> http://www.bp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5028
3층에는 70년대에 홍치과가 있었다. 치료를 받으러 몇번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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