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 History 1

싸리나무의 추억

La Vie En Rose 2011. 7. 10. 11:25

 

어제 오후, 철마산 정상 의 싸리나무이다. 큼직하게 아주 잘자랐다.

지난주만 해도 꽃이 피어 있었는데 장맛비 때문인지 꽃이 보이지 않는다.

산에 다닐때마다 싸리나무를 보면 생각나는것이 있다. 요즘은 싸리빗자루로 청소하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군에서 가을이면 월동준비를 위해 싸리나무를 채취하러 부대 근처의 산에 오른다. 산에 가면  싸리는 널려있을 정도로 풍부했다.

싸리나무는 가지가 길고 잔가지의 유연성이  좋으며 쉽게 마모가 되지않아  청소용 빗자루를 만들기에는 아주 좋은 재료이다.

군에 가기전, 집에서 마당을 쓸던 대나무빗자루는는 마모가 잘되지 않아 내구성은 좋으나 가지가 억세어 세밀하게 청소하기에는 썩 좋지는 않았다.

 

에 가면  빗자루질 하는 방법까지도 새로 배우게 된다.

집에서 하던것처럼 비질을 했더니 고참이, 시범을 보여준다. 청소한 흔적을 멋지게 남기란다.

이때 사용하는 빗자루가 얼기설기 엮은  길다란 싸리비다.

빗자루로  반달모양으로 쓸어대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쓸면 파도치는 물결무뉘의 모양이 생긴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에술적 감각까지 돋보인다.

 

남자는 군대를 가면 청소 하는 법부터  설겆이, 다림질,바느질까지 ... 여러가지를 배우게 된다.  요즘 군대는 어떤지 모르지만...

자대에 배치받고 나서 행정과 서무계로 배속이 되었다.

배치된 며칠후 수송부의 과장(수송관)이 와서 행정과장과 몇마디 하더니,  챠트특기가 있으니 수송부에서 근무하란다. (특기사항에 챠트라고 적었었다)

 

수송부는 현황을 알리기 위한 챠트도 써야하고, 근무외 시간에 업무를 해야하는 일이 많았다.

수송부 배치후 나의 직무는 차량부속을 취급하는 병기계(차량의 부속은 병기 이므로) 와 수송부 서무계를 겸했다.

나의 사수(나를 가르쳐주는 선임 병사)는 서울 출신 정창도 상병으로 가무잡잡하고 키가 작으며 당당한 체구를 가졌다.

개그 콘서트의   김병만 처럼...

수송부는 군수품을 취급하므로 검열이 잦았는데 정상병은 검열때가 되면 야작(근무외 시간의 夜間作業의 준말)을 하느라 점호에 빠지기 일쑤였다

 

수송부 생활이 한달여 지날무렵, 하루는 정상병이 같이 야작을 하란다. 지금 생각해보니 검열준비 였던것 같다.

야작을 하게 되면, 점호시간에 안들어가도 되고, 취침전까지의 내무생활을 안하므로 졸병으로서는 고참들 눈치를 안보게 되어 편한 것이다.

정상병으로서는 이러한 배려까지 생각한것 같았다. 평소에도 조수인 나를 세심하게 챙겨주었으므로...

물론 나의 업무 능력 으로서는 시키는 대로 할뿐 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할 능력은 없었다.  그래도 사수는 조수를 키우기 위해 일을 가르친다.

훗날 내가 사수가 되어 조수를 가르칠때도 그랬으니...

 

밤이 되어서도 어두운 사무실(조명이 안좋았던걸로 기억됨)에서 업무를 계속하고 있는데, 정상병이 라면을 끓인다.

울면이다.  졸병은 일요일외 평소에는 라면을 먹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일요일 점심은 라면이 나온다). 졸병은 라면을 끓여먹을 시간도 없고,

위로 층층 고참들 눈에 거슬리기라도 할까봐서...낮에 정상병이 야작용 울면을 준비했나 보다.

 

사무실의 난로위에 올려놓은 주전자(에서 라면을 끓인다) 김이 끓어오르자.   젓가락을 가져오란다.

갑자기 이 야밤에 젓가락을 가져오라니... 내무반에 다녀오겠다고 하니,  사무실뒤에 싸리비가 있으니 거기서 꺾어오란다.

가지를 꺾어온 싸리비 젓가락으로 사수인 정상병과 조수인 나는 늦은밤 어두운 사무실에서 후루룩 거리면서 맛있게 울면을 먹었다.

졸병시절, 밤에 이렇게 먹는 울면의 기막힌 맛은  지금도 깊게 남아있다. 

 

아침이 되어  나는 사무실앞 청소를 하기 위해 어제 꺾은 싸리나무를 보고는 ,,,놀래버렸다. 평소 유심히 못보던것을 보아버렸기 때문이다.

어제 꺾은 싸리비의 손잡이 에는 새까맣게 손때가  묻어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쓸어대는 빗자루 손잡이에 손때가 끼어있는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무실의 행정병 뿐만이 아니라 운전병은 물론, 손에 기름칠 떨어질날 없는 정비병까지 사용하는 싸리비이다 보니...

이걸로 어젯밤 울면을 먹었다니....속이 느글거렸다.   손잡이 아닌 중간부분을 꺾을걸 하면서...싸리비의 색이  갈색이고 어두운 색갈이라 때가 끼어 있는것을  제대로 못보았다.

그후로도 야작을 할때면 울면은 계속 먹었다.  정상병이 제대하고 내가 조수를 받고서도 야작시 간식은 울면이었다.

조수에게는 야! 젓가락 가져올때 손잡이 부분은 절대 꺾지마!

 

                            < 사진-싸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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