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 History 1

60년대 합승[2편]

La Vie En Rose 2012. 2. 11. 18:28

 

 

그당시 합승의 정원은 20인승으로(?) 기억된다.

지금 보면 촌스럽게 보이지만, 그때는 매우 주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겉에 붉은색칠을 한 합승의 내부에는, 운전석 오른쪽에 엔진룸이 있어 불뚝 튀어 올라와 있는데, 

겨울에 엔진룸 위에 앉아 있으면 따듯해서 학생들은 일부러 그곳에 앉기도 하고 어른들 역시 좌석이 없으면 앉았다.

 

                                                                (이사진은 합승이 없어지면서 생긴 대형버스. 엔진룸은 합승과 동일하게 튀어올라있다.)

 

운전석 우측 창앞에는 가로약40cm,높이 약30cm쯤되는 노선표를 거치대에 끼우고, 승하차하는 문 방향의 차체 중간에도 노선표를 끼우고 다녔다.

휘어지지 않을정도의 약간 두툼한 철판에는 ,흰페인트 바탕에 검은 글씨로 중간노선을, 종점은 붉은 색페인트로 써놓았다.

노선표는, 차주가 알아서 만들어야 했다.  솜씨좋은 작은아버지가 페인트붓으로,

각진 고딕체로 쓴 멋진 글씨 때문에, 우리차는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수 있을정도였다.

 

한여름 일요일의 송도행 배차. 박씨 아저씨 말대로 아다리 제대로 맞는날이다.

그시절 더운 여름에 가까운곳으로 물놀이 가려면 송도 해수욕장 밖에 없었다.

후에, 송도 못미쳐 새인천 유원지도 생겼지만...

 

발디딜틈 없이 손님을 꽉채운 송도행 합승은 용현동을 지나 조개고개를 넘어 송도로 달려간다.

창문을 전부 열어놓아도 한여름의 열기는 뜨겁다(에어콘은 구경도 못하던 시절). 유원지에 거의 다다르면 내리막길이다.

 

                                         ( 2011.여름. 송도 유원지 못미처 내리막길.)

 

합승의 낮은 높이 때문에 키가큰 외국인 한명은 힘이 들었는지,천장의 배기구를 열고 머리를 밖으로 빼어 시원한 공기를 즐기고 있었단다.

이를 본, 운전수 김씨 아저씨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자, 그외국인은 목을 안으로 들이고 한동안 목을 어루만지더란다.

그날밤 운행을 마치고 돌아온 조수 정진이가 깔깔대며 들려준 얘기다.

그와 함께, 우리차의 운전수와 차장의 관계를 깊이있게 얘기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삥땅에 관련된 얘기까지도 구체적으로 들려주었다.

걷힌 승차요금은 아무런 통제장치가 없기때문에 100% 운전수의 손에 달려있는것이다.

직장에 다니시는 아버지께서도 이러한것들을 알고 계셨겠지만,운전수에게는 한번도 싫은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운행을 끝내고 오면 차는 집밖의 로타리에 세워두고, 운전수는 돈가방을 들고 집에 들어온다.

언제나 처럼 어머니는 매일밤, 따듯한 밥과 비린내나는 반찬에, 매년 가을이면 집에서 담근 포도주를 반주로 내놓았다.

정진이 얘기로는, 다른 차주네에서는 하지않는다고 하면서, 우리집 운전수를 부러워하곤 했다.

물론, 운행중 저녁때에는 종점에서 운전수,조수 모두 밥을 사먹는다.(승객들이 낸 승차요금으로)

  

팔팔 끓인 물을 유담프에 가득 채우고 두꺼운 헝겊으로 싸서(데이지 않게) ,양키시장에서 사온 미군용 닭털침낭(슬리핑백)과

함께 밖에 있는 차로 가지고 간다.

2005.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기획한 [아! 어머니]전에 출품되었던 추억의 유담프.

 

정진이는 유담프를 침낭속 제일 아래끝에 넣는다. 유담프가 발에 닿아야 춥지 않게 잠을 잘수 있기 때문이다.

유담프를 넣고, 침낭속에 들어가 지퍼를 위로 올리고는 얼굴만 빼꼼하게 내놓고 잠을 잔다.

하루종일 승객들하고 싱갱이하느라 힘들었을텐데, 추운밤에도 이렇게 고생하는 정진이가 안쓰럽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집에 들어가려고 하면 자꾸만 더얘기하자고 조르기도 많이했다.

어린나이에, 추운 차안에서 밤새 지낼 생각에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침이되면 유담프는 온기없이 식어있었다.

 

나보다 한살많던 정진이는, 조수를 거쳐 운전수가 되고 나중에는 차주가 되는것이 꿈이라고 했다.

지금쯤 정진이는 어렸을때 꿈인, 차주가 되어있겠지!  아니, 큰 운수회사 사장이 되어있으면 좋겠다.

옛날 살던 우리집 근처의 사거리를 지나 다닌다면 내생각이 날텐데...

 

 

지금부터 43년전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