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대로

군자염전과 손목시계

La Vie En Rose 2012. 2. 2. 12:43

그때가 아마 1968년.

여름방학을 맞아 동네친구들끼리 궁리끝에 이번에는 군자염전으로 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동네에 내또래들이 많아 심심치 않게 머리를 짜내는 것이다

 

소문에 군자에서 망둥이가 잘잡힌다는 하여 군자염전에 가기로 하였다.

수인역에서 협괘열차를 타고 군자로.

소문대로 군자염전은 주안염전만큼 크기도 만만치 않았다.

 

                                                       60년대초. 수인선 협괘철도와 열차.    [한국대관]

 

                                                    군자염전.  [시흥시사]

 

전날, 개건너 다리밑에서 잡은 갯지렁이에,  일행 넷이 자리를 잡고 앉아 망둥이 낚시를 한다.

한참을 해도 낚시가 신통치 않다. 주안염전 같았으면 벌써 한참을 잡았을텐데...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동네녀석들 대여섯명이 와서 말을 건다. 어디서 왔느니, 몇학년이니 하면서...

내가 차고 있는 손목시계를 보며 내곁으로 몰려와서 한번 차보자고 수작을 건다.

 

시계는 동생이 금년 중학교 입학기념으로 아버지께서 사주신것으로 새시계를 차고 싶어 빌린것이다.

우리 일행중 손목시계는 나만 갖고 있었다.

그당시에는 손목시계가 흔치 않아 한학급에 몇명밖에 없었다.

 

그녀석들에게 차보라고 건네주었던 시계를 가까스로 되찾은 우리는 이미 낚시에 흥미를 잃고

지금 이자리에서 벗어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시계를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는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녀석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 10명이 넘는 녀석들이 우리를 에워쌓고 있었다.

우리 일행중, 주먹깨나 쓰는 S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수 없이 말수가 적어졌다. 

 

낚시도구를 챙기고 슬금 슬금 역으로 이동했다.

역이 가까워오자  일행 모두 뛰어서  좁다란 역사안으로 들어갔다.

역장에게 상황설명을 하니, 기차가 올때까지 역사내에 있으란다.

 

                                                     1994년 군자역.  [시흥시사(始興市史)] 

잠시후, 밖을 내다보고 깜짝 놀랐다.

국민학교 3~4학년정도된 녀석부터 고등학교3학년 정도되는 녀석들까지

약2~30명이 역을 둘러싸고 있는것이다.

아마 동네녀석들이 몽땅 나왔나보다.

 

                                         [고등학생시절의 내시계. 태엽없이, 차고다니면 자동적으로 태엽이 감기는 오리엔트시계.

                                   몇년전, 엔틱(?)한 이 시계를 청계천에서 유리를 광내어 차고 다녔으나 두어달만에 고장으로 서랍속으로..]

 

드디어 기차가 오고, 역장이 우리를 태우고 나서야 굳어졌던 얼굴이 펴졌다.

그후로 우리는, 군자에 가자는 말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다.

 

당진에 다녀오면서 군자 요금소에 닿으면 옛날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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