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천교 자리는 흔적도 없다. 개발과 산업화에 밀려서 인천교라는 명칭만 있고 다리는 없어졌다.
인천교를 건너면 그곳부터 개건너라고 하였고, 그래서인지 이다리를 "개건너 다리"라고 불렀다.
갯벌을 줄인 "개"와 다리 넘어를 뜻하는 "건너"가 합쳐 개건너가 된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건너는 한적한 시골로 민가도 별로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어릴적 인천교는 인천시내와 외곽을 가르는 경계로서 인천교 너머에는 길양쪽의 가로수만 보였다. 뻗어있는 비포장도로는 서울로 가는길이었다.
어릴때 서울을 가보지 못한 나는 이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궁금 하였다.
황량한 이길로 몇시간 가면 서울로 갈수 있는지?
인천교가 있던 곳(고가차도 밑). 지금은 이 터위에 고가차도(인천의료원 입구)가 있다
고가차도는 가로로 되어있는데, 인천교는 세로(직진)로 지금 위사진에서 보면 고가차도 그림자에 十자가 되게 놓여져 있엇다.
(2017.10.29 사진) 옛 인천교 터를 알리는 단 두개의 점포
[인천교가 놓여있던 방향. (하얗게 표시한 부분)]
좌측으로 가면 고가차도 끝나는곳에 인천의료원입구. 우측으로 가면 간석동 홈플러스. . 오던길은 쑥골이다. 1998년 없어진 인천교터.
앞으로 직진하면 (고가차도 지나서) 그곳부터가 개건너였다. 계속가면 가정동.
인천교는 1957년 착공하여 1958년 1월7일 완공하였다고 한다.
위 석장의 사진은 2018,4.7 수도국산 박물관 기획특별전 "송림동" 에서.....
위의 인천교 명판은, 인천교가 1958년 준공되었지만, 1973년 확장공사를 마친후
부착되었던 명판이다. 아래 사진은 인천교 확장공사.
옛날 우리들이 인천교로 가는길은 박문여자중고등학교 뒷산인 부처산을 넘어 쑥골을 지나서 주안염전 뚝을 걸어서 가는길과
동산중고등학교 뒷길을 지나 재능대 입구에서 궁현동(지금은 없어진). 궁현사거리를 지나 송림고개를 내려가는길이 있었다.
동산 중고등학교 뒷길
박문사거리에서 동산중고등학교 뒤로 가는길. 전면 높은곳에는 재능대. 예전의 대헌공전. 대헌고, 옛날에는 무선고등학교 자리.
부처산 1953년. 부처산 넘어 우리나라 최초의 염전인 주안염전이 보인다. 엄청 크다.
사진의 좌측이 인천교 자리 이다. 사진에 보이는 시기에는 물론 인천교가 없었을때였다.
박문여고 앞을 지나 부처산 오르던 길.
옛부처산 정상 못미쳐서... 사진의 우측 정상이 부처산 정상 자리였던 곳으로 짐작.
선인중 근처가 부처산 정상으로 짐작.(선인학원내에서 본 선인중학교와 선화여중)
선화여중(선인중 바로옆에 있는 여자중학교)에서 본 박문사거리,숭의체육관 부근
궁현사거리 (현대시장에서 재능대쪽으로 올라와 인천교가는도중)
<보너스 화면> 현대시장앞의 현대극장. 옛날 이류극장이었던 이곳은 언제나 동시상영(영화두편을 볼수있는)을 하는극장으로 서민들이 즐겨찾았다.
60년대초 경희대학교를 다니던 막내외삼촌은 현대극장을 갈때는 마스크를 쓰고 갔다. 아는 사람 만날까봐서.(창피하다고)
지금은 천냥백화점이 되었다.
옛날, 현대극장. 사진오른쪽에 포니2 택시가 보인다. 포니2가 82년에 출시되었으니 80년대 후반쯤 되지 않을까...
쑥골로에서 인천교 가는길. 옛날 쑥골은 포도밭, 참외밭이 있어 주안염전에 갈때는 이곳을 지나게 되는데, 쑥골에서 가끔 과일서리를 하기도 하였다.
쑥골로의 서화초등학교
1970년 인천교와 선인체육관. 당시 선인체육관의 규모와 큼직한 외형은 놀라웠다.
1974년 인천교.
2011.3.3 인천교터에서 선인체육관을 보고... 위의 37년전 사진과 비교해보면...예전의 풍경이 풍요로워 보인다.
사진 우측에 있는 인천교약국. 약국 명이라도 있으니 인천교터라는것을 알지. 대부분은 무심히 지나친다.
현재의 선인체육관.
아마 중학교 1학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그날도 또래의 아이들끼리 동네에 모여서 놀다가 망둥이 낚시 준비차 갯지렁이(갯지네)잡으러 인천교에 가자고 해서 변변한 도구도 없이 갔다.
갯바닥에 앉아서 개흙에 손을 깊게 넣어 끄집어 올리면 끝도 없이 기다란 지렁이가 밖으로 나왔다.
인천교에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에 밀물때는 다리아래에 바닷물이 들어와 넘실거렸다.
주안염전으로 망둥이 낚시를 하러갈때는 이곳에 들러 팔뚝보다 훨씬 긴 시퍼런 갯지렁이를 잡는곳이기도 했다.
그때는 길다랗고 녹색을 띈 갯지렁이를 잡으며 전혀 징그럽지가 않았다.
도착해보니 물이 완전히 빠져 갯바닥에 물이 거의 빠져나간 상태였다.
평소 인천교에 가보면 물이 완전히 빠져 나간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처음으로 보는, 물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우리들은 신발을 벗고 다리밑으로 내려갔다. 미끈거리는 개흙에 빠져 가면서 바닥에 내려가니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인천교는 바닷물과 민물이 교류하는곳이라(지금 생각해보니, 기수지역) 갯지렁이 뿐만 아니라 붕어들도 있었는데, 썰물에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한 붕어들이
사람들의 발자국 패인곳에서 꼼짝을 못하고 팔딱 거리며 갇혀있는데, 붕어의 수가 어마어마 하게 많아서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정신없이 손으로 붕어를 주워서 신발이건 그릇이건 담을수있는것에 꽉꽉 눌러(?)담았지만 남아있는 붕어의 수가 엄청나서, 아쉽지만 다음에는 큰 빠깨쓰
(양동이)를 가지고 오자며 인천교를 뒤로 하고 동네로 왔다.
지금도 인천교를 자주 지나 다닌다. 이곳을 지날때마다 그때 친구들과 같이 이곳에서 잡던 붕어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가 자라던 옛날에는 이곳 인천교 뿐만 아니라 제물포역 근처의 와룡양조장 부근 개울, 그리고 제물포역앞 벌판의 임자없는 깊은 우물속에도 많은 붕어가 있었다.
그당시 제물포역 인근의 개천에는 버들붕어 송사리,넙적붕어,미꾸라지등 .. 여름이면 몰려가서 고무신으로 붕어를 잡아, 가져간 유리병에 넣고 좋아했다.
그만큼 개천이 깨끗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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