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TV는 1966년8월에 금성사에서 500대 생산된 VD-191(19인치) 흑백TV 이다.
최초 500대를 시작으로 1968년까지 40,635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내가 중학교때, 500대가 출시된 최초의 이 TV를 아버지께서 사오셨다.
전자제품을 선호하시는 아버지 덕에 최초의 금성 선풍기, 냉장고등이 들여와졌고...
금성사 대리점의 트럭이 전자제품을 싣고 동네로 들어오면 사람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이TV도 경동 사거리의 경동파출소 맞은편에 있는 금성사 대리점에서 사오셨을게다.
아버지는 그대리점에서만 금성사 제품을 구입하셨으니까.
지금도 경동사거리를 지날때면 지금은 없어진 그대리점이 생각난다.
아마, 나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전자제품을 선호하는것인가 보다.
다리가 4개 달려있는 이 TV는 그당시 86,000원으로, 쌀한가마(80Kg)에 2500원 하던 시절이니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내부는 진공관이 들어있는(고장 수리시 수리기사 옆에서 들여다 보니) TV였다.
2005년 8월 25일 작은놈과 같이 용산 전쟁기년관의 "아! 어머니"전 을 구경했다.
이곳에 전시되어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이 TV를 보니 반가웠다. 비록 네개의 다리(다리길이가 약50cm정도) 없이 몸체만 전시 되어있었지만...
" 아! 어머니" 전에 전시된 TV.
이 TV에는 추억어린 이야기도 많다.
동네에 TV 있는집이 없어서 오랜기간동안 동네 아줌마들, 아이들에게 TV시청 봉사를 하여야했다.
아줌마들에게는 아침에 방송하는 드라마 "아씨"."장희빈"를 비롯하여.. 아침마다 우리집은 아줌마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복싱경기 또는 레슬링 경기시에는 동네아이들이 수십명씩 몰려와 문앞에 서서 한목소리로 " 테레비 좀 보여 주세요" 하면서 합창을 한다.
TV는 안방에 설치 되어 있었는데 안방, 그리고 마루까지, 적어도 100여명 정도의 아이들이 촘촘히 앉아서 TV를 보았다.
그당시, 레슬링은 국민모두에게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장영철(날쌘돌이), 천규덕(탤런트 천호진씨의 아버지. 당수가 특기임)등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김일 은 나중에 박치기를 무기로 ..국내 레슬링계를 평정하였다.
복싱이던,레슬링이던, 우리나라 선수가 이기면 집이 떠나갈듯 박수를 치곤했다.
복싱, 레슬링 외에 고정적으로 일요일 저녁만 되면 기다렸다는듯이 "테레비 좀 보여 주세요"하는 수십명의 우렁찬 소리가 대문밖에서 들린다.
이유는 미국영화(엄격하게 말하면 드라마) "전투" 때문이었다.
이영화는 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미군 유격부대와 독일군의 숨막히는 전투를 그려내는 영화로, 당대 최고의 볼거리였다.
릭 제이슨. 길 헨리 대위로 출현
주인공 샌더스중사역의 빅 모로우.
전투가 끝나면 아이들은 알아서 나간다. 여름에는 선풍기까지 동원해서 아이들에게 바람을 쐬어주는데도 방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아이들은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TV에 집중한다. TV 보느라 더위를 모른다는 표현이 맞겠다.
땀냄새, 발냄새등... 냄새가 진동하는 방을 비로 쓸면 모래, 흙이 한웅큼 나온다.
그때 보던 전투는 지금도 잊혀지지않는다.
약4년전인가??? 용산의 예인사에서 전투 12장짜리 DVD 타이틀을 파는데 가격이 높아서 못삿다.
그후 인터넷에서 덤핑용으로 헐값에 나온 12장 1질을 구입했다.
이영화가 요즘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아서 팔리지 않는가 보다. 헐값에 나오는걸 보니...
2만얼마인가를 주고 구입한것 같다.
최초의 금성사 TV를 떠울리면, "전투"가 생각나고,김기수,서강일등 복싱선수와 장영철,천규덕 같은 레슬링 선수가 눈에 선하다.
그옛날, 옹기종기 모여앉아 TV를 보던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젠 모두 중장년이 되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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