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여행

덕숭산수덕사,외갓집. 복지겸장군 묘역등..

La Vie En Rose 2011. 10. 6. 13:09

오랫동안 벼르던 외갓집과 수덕사등 외갓집 인근을 다녀오다.  2011.10.05.

 

1.외증조 할아버지 묘역

  외증조할아버지는 윤봉길의사가 한문공부를 할때 서당의 훈장을 하신분으로,윤의사의 성장배경과 관련된 책에 자주 등장하시는 분이다.

  아이들이 어렸을때 용산 전쟁기념관에 가면 윤봉길의사의 흉상을 보며 외증조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대로에서 산길을 500 여 미터쯤 걸어간다.

 

지난여름 많은비로 길이 패여 돌들이 불거져 튀어나왔다.

 

관절염으로 다리가 불편하신 외숙모님과 외삼촌 그리고 누나가 산길을 올라오고 있다.

 

외증조 할아버지 묘역이다. 수시로 외삼촌이 오셔서  깔끔하게 정돈하신다.

 

가져간 국화를 꽂아드렸다.

 

외삼촌 붓글씨.  현재 살고게신 아파트에 걸려있는 직접 쓰신 붓글씨. 와! 명필이시네~.  일부러 외삼촌 존함은 지웠다. 

 

현재는 비어있는, 덕산 외갓집에 걸려있는 외삼촌의 붓글씨.  훈장이신  할아버지께 공부하느라 야단도 많이 맞으셨다고...

2. 수덕사

수덕사에 들리기전, 입구의 식당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였다.

 

 

더덕과 불고기, 그리고 시골된장찌개. 각종산나물 백반으로 점심을 먹었다.  먹고 난뒤라 ...

 

 

수덕사 들어가기전, 입구 좌우에는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즐비했다.

단체관광객인지.  태국, 중국여행객들이 왔다.

 

수덕사 관광안내문. 산전체가 수덕사 절터이다.   중학교 1학년때 수학여행을 오고 처음이다.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 재위시인 서기554년 지명대사가 수도인 사비성 북부에 창건하여 지금까지 1500여년을 이어오고 있다.

백제 사찰로는 흥륜사,수덕사등 12사찰이 있는데 그중 수덕사만이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수덕사. 아래 60년대초 사진과 비교.

수덕사 입구.  1960년대초.[한국대관]

수덕사 입구의 문도 60년대와 현재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문을 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만 같고 나머지 지붕과 돌난간이 없는등..  50년이 흐르는 동안 많이 바뀌었다.

 

수덕사 입구와 매표소.

 

입구 좌측에 있는 석상.

 

외삼촌께서 이곳으로 들어 가지말고 견성암(여승들만이 거주하는 암자)으로 직접가자고 하신다.

수덕사 근처가 고향인 외삼촌의 인솔하에...

 

 

 담에 붙은 덩쿨은 그야말로 천년 세월의 나이를 묻어나게 힌다.

흰석상의 입에는 사람들이 동전을 넣어줘 동전이 가득하다.

 

 

 

 대웅전과 금강보탑

 

  

법고각-법고 두드리는것을 못봐서 아쉽긴 했지만...현판은 수덕사 방장이신 원담스님의 글씨라고 한다.

 

 

 대웅전과 삼층석탑. 대웅전 현판도 방장이신 원담스님(1926~) 글씨라고.

 

60년대초 수덕사 대웅전.  출처: 한국대관

위의 대웅전 사진과 비교시 석탑의 높이가 이상하다. 60년대에는 7층 석탑이었는데 3층밖에 없다.왜 ???

 

 

                                                              

 금강보탑. 이곳에 서있던 보탑의 고증을 거쳐 2000년7월에 세우다.

 

 

 삼층석탑-신라 문무왕5년에 건립. 원효대사가 중수,  통일신라시대의 유형으로 고려초기의 건립된것으로 추정.

 대웅전 내부

 수덕사를 창건한 지명법사비

 

보살이 절을 올리고 있다.

 

 공양실. 아마 이곳에서 식사준비를 하나보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불국사, 신흥사등을 보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수덕사는 규모도 크려니와 백제의 고찰답게 고색창연해서 깊어가는 가을색 같다.

여승들만의 생활공간인 견성암(60년대 가요. 송춘희:수덕사의 여승)을 가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서 대웅전까지만 보고 내려왔다

60년대 유행했던 송춘희의 "수덕사의 여승"

 

 

송춘희는 1937년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66년 수덕사의 여승이 크게 히트 하였으나 정작 본인은 수덕사를 가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견성암은 여자 스님들만이 있는곳으로 유명하며, 노래 수덕사의 여승은 곧 견성암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라고 볼수있다.  

견성암의 일엽스님은 춘원 이광수와의 염문등 두번의 결혼,이혼경력이 있으며 견성암에 출가하여 27년간을 밖에 나오지 않고 수도를 하였으며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책을 쓰기도 한 신여성 문필가였다.   이러한 이유로 일엽스님의 인생여정과 같다고 생각한 문도들이 이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항의하였다고 한다.    가수 송춘희는 이노래 히트후에 불교로 개종하여 29년째 교도소, 군법당등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한다.

 

 

계단입구마다 화분에 심은 사과나무가 사과를 탐스럽게 달고 있다.  수덕사내에서 본것만 해도 10그루는 넘겠다.

오면서 본 길가의 도로양쪽에도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볼만하였다.

예산사과. 그 명성이 어디 가겠는가!

 

3.외갓집

 

 

 

외갓집 전경. 지금은 비워둔상태. 옛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  어릴때 봤던 외갓집은 언덕위에 올라앉아 툇마루를 길게 둘렀었다.

국민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엄마 치마자락 붙잡고 산모퉁이를 돌아서 한참 산길을 걸어온 이곳은 몰라보게 바뀌었다.  

언덕 아래에는 오른쪽에 원두막처럼 생긴 뒷간이 있었고.  왼쪽으로는 키가 커다란 감나무. 그옆에는 졸졸 거리며 시냇물이 흘렀다.

 

 

 

서당 훈장이셨던 외증조 할아버지의 제자들이 세운 추모비가 마당에 있다.

 

마당의 감나무. 키가 작아 옛날에 보던 감나무가 아니다.

 

옛날의 시냇물은 지금도 조금씩 흐르고 있다. 폭은 그대로 같은데 제방을 쌓아서 옛맛이 나지 않는다.

 

4. 복지겸장군 묘역

수덕사를 나와서 당진으로 가는중 복지겸장군의 묘를 가기로 하였다.

 

고려개국 1등공신  복지겸장군비. 신숭겸과 함께 왕건의 충복이었던 복지겸장군.

태조왕건 TV드라마를 생각하며 경내를 구경하였다.

 

2008년12월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창의문

 

묘입구의 정충문

 

 

복지겸장군의 묘

 

 

복지겸장군 묘역을 나와 당진을 둘러 올라왔다.

 

연로하신 외삼촌 내외와 같이 외갓집을 비롯 여기저기를 다녀온 어제는 날씨도 맑고 화창해서 나들이에 좋은 날씨였다.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까지,  볼것 많고 즐거운 가을 소풍이었다.

 

 

외갓집 마당에서 따온 단감나뭇가지를 스피커위에 올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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