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 아트센터.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에 전시되었던 사진과
오래전 내가 겪은 미군부대와 관련된 이야기.
어렸던 시절, 부평은 미군부대 동네.
에스컴이 있는 부평을 에스컴시티라고까지 한것은 그당시 몰랐던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니,미군부대의 규모로 보아 에스컴시티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듯하다.
삼릉(三菱)과 조병창. 뜻도 모르고 부르던 삼릉.(지금도 버스 노선에는 삼능이 있다)
일제시대, 무기생산공장인 조병창건설을 일본 미쯔비시가 맡아했고, 조병창옆에는 미쯔비시 공장이 있었다.
미쯔비시 공장에서 일하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곳이라 삼릉(현 동수전철역 부근)이라 불리워진다고.
미쯔비시의 한자어인 삼릉이라는 지명은 조병창 시절부터 통용되어 내려오고 있는것이다.
50년대 에스컴. 뒷쪽 멀리 보이는곳이 계양산으로 추정된다.
보이는 산들은 하나같이 나무가 안보이는 민둥산. 요즘의 산들은 나무가 많아 솎아주기도 하는데....
1950년대 에스컴.
삼릉. 현 부평2동. 멀리 원적산과 앞에 보이는 에스컴시티.
부평1동 동아아파트. 에스컴시절 미군부대자리, 그곳은 현재도 유일하게 그자리를 지키고 있는 캠프 마켓으로 생각된다.
이 캠프 마켓마저 곧 평택으로 이전한다고 한다. 이곳은 부평에서도 역 바로앞의 교통 요충지.
건물 왼편에 보이는 높은 굴뚝은 아직도 있는듯하다. 아래 사진 참조.
사진의 중간에 보이는 굴뚝.
사진 중간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부원중학교. 보이지 않지만 부원중 왼쪽은 캠프마켓.
오른쪽 붉은 신호등 뒷쪽이 동아아파트. 2014.11월
121후송병원.산곡3동 현대아파트1지구. 71년 5월 용산으로 이전. 제18의무사령부 산하병원으로 당시 남한내 최대규모의 병원.
이곳이 현대아파트 1단지라면, 뒤에 보이는 선포산.
기념품가게. 양복점.세탁소.사진관...
당시 미군들이 찝차 또는 커다란 승용차에 애완견(애완견 종류는 주로, 귀가 늘어지고 털은 구불구불 한것이 세타?)을 태우고 지나가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브미 쪼꼬렛" "기브미 껌" 미군은 차를 세우고 쪼꼬렛이나 껌을 주기도 하였다 (60년대 국민학교 시절 얘기).
껌이 귀하던 시절. 껌을 씹고 나서 자기전에 벽에 붙혀놓고 다음날 아침이면 또 씹고, 밤이 되면 또 붙혀놓고...
며칠이 지나 연보라색 이었던 껌은 까맣게 변해도 미제 껌이라서 좋기만 했다.
에스컴 주변 지역 설명.
부평,문학산을 비롯하여 인천시내에 미군부대가 많던 시절.친척들도 미군부대 다니는 분들이 계셨다.
요즘, 낚시 함께 다니는 친구 H의 아버지도 미군부대에 다니셨다고.
그만큼 당시에는 미군부대로 인하여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한국인 직원들은 외기노조에 가입해 있었다.
가끔, 외기노조(외국기관 노동조합)가 파업을 하면 신문에 실리기도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노동조합 운동의 효시로 생각된다.
당시의 우리나라에는 공장도 별로 없었고, 파업이란 단어는 생소하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6.25 전쟁후 인천에는 변변한 공장이라야 대성목재, 대한중공업(현재,현대제철),판유리 정도였으며
전쟁의 후유증으로 상이군인들이 많아,그중 일부는 목발을 짚고 다니며 행패를 부리거나 손 부상으로 쇠갈고리를 부착한 이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주로 이들은 넝마주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일반인이 미군부대에 다니는것은 큰 행운이었다.
작은아버지 결혼식을 하던날(그당시는 모두들 집에서 잔치). 우리집은 손님을 치루느라 정신없을때 넝마주이 몇사람이 찾아왔다.
넝마주이 대장은 아버지와의 협의를 거쳐, 잔치 기간 동안 자기들에게 술과 음식을 제공해주는 대신 다른 넝마주이들이
와서 행패부리지 못하게 막아주는 조건으로 3일간의 결혼식 기간동안 우리집의 하우스 가드(?) 를 해주었다.
밖에 나가보면 넝마주이들은 집앞의 로타리에서 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집집마다 대문앞에는 서너차례 거지들이 깡통을 들고 와서 밥을 동냥 해달라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김이 오르는 밥을 퍼서 대문앞 거지의 깡통에 넣어주면서 깡통안을 들여다보면 다른집에서 얻어온 김치와 밥이 담겨있었다.
깡통안에는 밥이 수북한데도 얻으러 다니는것을 보면 식솔들이 많은가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에스컴시티 주변의 클럽.
6.25전쟁후 미군의 보급물자 지원사령부인 에스컴이 부평에 주둔하고 나서 미군 상대의 클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에스컴시티에서 활동한 연예인은, 신중현, 배호를 비롯하여 노란샤쓰의 사나이 한명숙 외에도 다수의 가수가 있었다, 인천 출신은
키보이스와 HE6 리더로 활동한 김홍탁(동산고 졸업,LA다저스 .현,서울재즈 아카데미 원장).
그룹 데블스는 인천의 신포동에서 태동하여 부평 에스컴을 거쳐 파주의 미군기지 클럽에서도 활동.
보컬과 기타를 담당한 리더 김명길은 화수동 출생. 송현국,동인천중,인천공고 졸업. 연석원은 황해도 출생.인천에서 성장.
용산 미군기지보다 더많은 연예인들이 이곳 부평의 에스컴시티 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한국 대중음악 60년의 뿌리가 부평에 있었다.
이때문인지 부평에는 영창,삼익,콜트등 악기회사들이 생겨났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가수들은 미8군에 소속되어야 음악성을 검증받던 때였다.
어릴때 옆집에 사는 XX의 큰누나는 오후만 되면 화장을 하고 어디론가 나간다.
xx의 아버지는 무직으로 집에 돈버는 사람이 없었다.
어린 우리들은, 이모습을 보고 미군부대 가는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지금도 잊혀지지않는것 하나. XX의 누나는 그당시 여염집 처녀들은 신지않는 굵은 무늬의 망사스타킹을 신고 다녔다.
당시의 여성들이 일할곳이라야 인천에 많이있는 성냥공장정도....
에스컴시티 PX. 1960년대.
불문학을 전공한 형은 졸업후 취직을 하지 않고,...
지금 생각하니 문학산으로 추정되는 미군부대의 PX에서 미군상대로 양화점을 하였다
사회경험이 없었던 형은 그리 오래지 않아 양화점 문을 닫았다.
하지만 점포운영시 가져온 몇켤레의 구두는 지금 생각해도 상상을 뛰어넘는 디자인의 구두로, 번쩍거리면서
뒷굽 높이가 약 십센티미터쯤 되고 그리스 고전양식으로 구두의 앞테두리을 장식한 파격적인 모양이었다.
한동안 이구두를 신고 학교에 가면 구경하던 친구들이 신기하다고 쳐다보느라 정신 없었다.
형이 미군부대 PX 양화점 경영시 가져온 구두를 신고, (군대 전역후 4학년 복학) 학교에서 친구들과.
구두가 바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구두 앞두께와 왼발 뒷쪽에 살짝 보이는 10cm 정도의 뒷굽.
뒤에 보이는 산은 만월산(약사암). 에스컴 시티 1960년대.
어릴적 윗동네 사는 광표는 운동을 좋아하였다.
인천의 많은 아버지들이 미군부대에 다니셨듯 광표 아버지께서도 미군부대에 다니셨다.
어느날인가 광표는 아버지가 부대에서 가져온 칠면조 고기를 내가 먹는 원기소와 바꾸자는 제의를 하였다.
광표 아버지가 가져온 칠면조 고기는 쇠고기색에 닭고기처럼 결이 있어 잘 찢어졌고 맛있었다.
광표는 운동을 좋아하므로 힘이 생기는(?) 원기소를 먹고 싶었나 보다.
그렇지만, 그시절에 시중에서는 구경도 못하던 칠면조 고기를 미군부대에 다니는 이들의 가족들은 먹었다니....
지금도 칠면조 고기를 보면, 원기소를 좋아하던 광표가 생각난다.
남부고가교 아래 경인철도와 부평공원 자리.
현재의 신촌사거리. 한국군 군차량이 보인다. 아마 호봉산 아래의 3보급대. 2014.11월
고등학교시절. 학교에는 부평에서 통학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어느날 담임선생님께서 부평 통학생중 한명을 지적하여, 사는 동네 이름을 물어보았다.
신촌이라고 대답하자, 선생님께서는...에이~~...
왜냐하면 신촌은 에스컴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동네가 시끄럽다는 얘기다.
위의 사진(에스컴 주변지역 설명)을 보면 그당시는 선포산 밑에서 부터 부평역까지 모두 미군부대였다.
신촌은 현재 현대아파트 자리로,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미군부대를 거쳐 한국군 공수부대가 주둔해 있었던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신촌을 지나 화랑농장쪽으로 내려가면 한국군 보급부대가 있다.
오래전부터 부대이전 얘기가 들리던데, 자연보호를 위해 그냥 두었으면 .......
캠프 마켓 남쪽 길건너 맞은편. 제3군수사령부의 88정비대였던곳으로 현재는 부평공원. 2014,11월.
사진 左上 설명글. 68경자동차부대는 88정비대의 오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68정비대는 현재 부영공원 자리. 88정비대는 경인선 철로옆 현재는 부평공원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철거전 이건물은, 서울로 통학시 매일 보던 낯익은 건물이다.
[이 사진은 2018.6.30 인천 도시역사관에서.... 2 라고 쓰인 글씨의 건물이 미쓰비시 공장 이었던 곳]
[2018.6.30. 인천 도시역사관...미쓰비시 모자와 컵]
산곡국민학교 조회. 미44공병대의 도움으로 운동장 확장.
백운역 남부 농가. 원통고개 입구. 멀리 조병창 건물이 보인다.
명신여고 근처에서 찍은 영단주택과 에스컴시티.
60년대 인천 또는 미군부대가 있는 도시에 사는 학생들은 검은색의 스모르 바지, 신사는 사지바지를 입는것이 멋이었다.
당시 국산 중저가 옷감은 잘 구겨지고 주름을 잡아도 금방 풀어지곤 했는데, 스모르와 사지는 한번 주름을 잡으면 오래도록
주름 보존도 잘되고 옷감도 좋았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것 이므로 군복색깔은 단속이 된다고 하여, 국방색의 스모르 바지와 사지바지를
검게 염색 한것을 미림극장 뒤의 양키시장에 가서 사입었다,
왜 스모르 바지라고 했는지는 모르나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는 아주 좋았다.
자세히 모르겠지만, 사지는 미군 정복. 스모르는 작업복이 아닌가 짐작된다.
롯데백화점 주차장. 1960년대.
캠프마켓 우측의 철로와 동아아파트, 롯데백화점 주차장 입구. 2014.11월.
철로 좌측이 현재도 있는 캠프 마켓. 사진에 보이는 이곳도 모두가 미군부대였다.
위 사진 60년대 롯데백화점 주차장. 사진의 개울이 혹시 신촌교가 아닌가 추정해본다.
신촌교는 20년전만해도 복개가 안되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교각과 파이프로 되어있는 펜스만 남아있다.
산곡국민학교 개교 기념 운동회 1953년.
신촌일대. 현 부평공원. 60년대에는 사진에 보이는 소가 끄는 구루마를 길에서 흔하게 볼수 있었다.
머리에 똬리를 받치고 과일을 팔러 다니는 아줌마
원통고개 입구, 현백운역 남부 부평3동 성당 맞은편.
부평1동 부광교회옆 주택.
장고개와 주안염전.
캠프마켓 전경 링크---> http://www.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m_no=1&sq=26638&thread=&sec=1
아래 사진은 캠프 마켓 주변. 2014.11월.
캠프 마켓 서쪽 급수탱크.
캠프 마켓 담장내부의 건물.
담장 틈으로 보여지는 내부
머지 않아 평택으로 이전하는 캠프 마켓.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의 경고문.
이전 시기는 2016년 전후로 예상.
현재도 사용되는듯한 2 GATE
2 GATE 옆 담장.
캠프 마켓 동쪽 담장. 수십년간 군수물자를 실어 날랐을 군용철로.
2013년 11월7일
에스컴 시티의 마지막 남아있는 캠프마켓에도 다시 낙엽의 계절이 찾아왔다. 2014.11월23일
캠프마켓! 앞으로 맞을 가을이 이제 한두번 남았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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